골프가 생각보다 어려운 운동이네요.
어릴적 자전거는 한번 배우면 오래 있다 다시타도 별 문제가 없는데 골프는 안그런거 같아요.
오랜만에 하시는 분들도 다시 레슨을 받는다고 하네요.
공부도 하고 기억할겸 골프관련된 정리를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기본적인것부터 알아볼게요.
▶ 홀 hole
공을 넣는 구멍을 말한답니다.
정규코스는 18홀 이에요 그리고 그 절반 중 전반 9홀은 아웃코스 후반 9홀은 인코스 라고 해요.
▶ 홀의 거리
티그라운드에서 그린 중앙까지의 거리를 말합니다.
▶ 티 그라운드
각 홀의 한타를 치는 장소 약치이으로 "티"라고 한답니다.
▶ 파
각 홀의 기준타수. 각 홀마다 거리가 다른데 그 거리마다 타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 그린
짧은 잔디가 심어져 있는 곳으로 마지막 깃발이 있는 곳이에요. 마지막 홀이있는 영역을 가리킵니다.
▶ 페어웨이
티에서 그린까지의 잔디 지역으로 주 플레이를 하는 곳입니다.
▶ 러프
벙커와 같이 장애물이에요 잡초가 무성한 곳을 말합니다.
▶ 벙커 이것도 장애물인데 보통은 모래가 깔려있는 움푹 패인곳을 말해요
▶ 워터해저드 장애물 입니다. 코스안에 연못이나 냇가를 만들어 놓은거에요 ▶ 마운드 벙커나 그린 주변의 약간 지대가 높은 지역을 말합니다. ▶ OB(아웃 오브 바운드) 게임을 하다보면 플레이 외로 공이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게임을 하는 공간을 벗어난거죠. 다른 게임을 예를 들면 아웃라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골프는 18홀이고 72타가 기준입니다.
골프시 걷는 거리는 약 6㎞, 소요시간은 3시간 30분에서 4시간이 표준이고 홀마다 거리가 달라서 거리에 따라 기준타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3파, 4파, 5파로 나뉩니다.
기준타수를 파(par)라고 말합니다.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3파= 남자 : 229m 이하 / 여자 : 192m 이하
4파= 남자 : 230~430m 이하 / 여자 : 192~336m 이하
5파= 남자 : 431이상 / 여자: 367m 이상
18홀은 3파-4개, 4파-10개, 5파-4개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렇게 18홀의 기준타수가 정해지게 됩니다
오늘은 간단히 골프의 기원도 알아봐요
골프의 기원은 네덜란드의 아이스하키와 비슷한 놀이가 스코틀랜드로 건너가서 골프로 변화되었다는 설과 스코틀랜드의 양치는 목동들이 지팡이로 돌을 쳐서 구멍에 넣던 것이 골프로 발전되었다는 설, 그리고 로마제국이 스코틀랜드를 정복하였을 때 군사들이 골프와 비슷한 놀이를 하던 것이 스코틀랜드에 남아 골프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현재와 같은 골프경기가 시작된 것은 15세기 중엽 스코틀랜드에서 비롯되었다. 1575년 스코틀랜드의회는 골프에 너무 열중하여 국방을 위한 활쏘기훈련을 소홀히 한다 하여 골프금지령까지 내렸으나, 점점 번성하여 왕후나 귀족들도 흥미를 가지고 골프를 즐기게 되었다.
그 뒤 1754년 22명의 귀족들이 모여서 세인트앤드류스 골프클럽(Saint Andrews Golf Club)을 형성하였고, 1834년 윌리엄 4세가 세인트앤드류스 골프클럽에 로열앤드에인션트 골프클럽(Royal and Ancient Golf Club)이라는 명칭을 붙여 줌으로써 이 기관은 영국 전역의 골프클럽을 통할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13개 항목의 골프규칙이 성문화되었다.
1860년 처음으로 전 영국오픈선수권대회가 프레스트위크 코스에서 개최되었고,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골프는 영국에서만 성행했다. 그 뒤 미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과 일본·한국 등지에도 보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1888년 스코틀랜드 출신인 레이드가 뉴욕의 욘커스(Yonkers)에 처음으로 세인트앤드류스 골프클럽을 만든 뒤, 1894년 미국 골프협회가 설립되면서 1930년대에는 영국을 압도하는 우수한 선수들을 배출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골프가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영친왕(李垠)이 골프장 대지로 군자리(성동구 능동, 현 어린이대공원) 땅을 무상으로 대여해 주고, 경기장 건설비로 2만 원을 하사하여 만든 전장 6,500야드의 18홀 서울컨트리클럽이 1929년 개장되면서부터이다.
일반인에게 골프가 보급된 것은 1924년 경성골프구락부가 결성되면서부터인데, 이 때 골프를 가르칠 지도자가 없어 1933년 일본에서 진청수(陳淸水)·나카무라(中村兼吉) 등을 서울에 초청하여 경기지도도 받고 시범경기도 하였다. 그 때 우리 나라 사람으로는 박용균(朴容均)·장병량(張秉良) 등 약 50여 명의 골퍼가 있었다.
그 뒤 1937년 조선골프연맹이 결성되었고 1941년 우리 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연덕춘(延德春)이 일본 오픈대회에서 26세의 나이로 우승하였다. 그 뒤 광복 및 6·25전쟁으로 침체되었던 골프는 1953년 서울컨트리클럽이 재건되면서 본격적으로 보급되어,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 정식 종목으로 선택되었다.
참조: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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